해발 2280미터가 넘는 산 정상에 자리한 계단식 성곽 도시. 문자도, 철기도, 화약도, 수레바퀴도 없었지만 제국을 형성한 위대한 잉카 민족의 비밀 도시.
1911년 7월 24일, 예일 대학교의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 1875~1956)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존재를 알리지 않았던 잃어버린 도시. 산 아래쪽에서는 보이지 않아 공중에서만 확인이 가능한 공중도시.
이런 놀라운 모습의 마추픽추(Machu Picchu)는 잉카 제국이 멸망한 후 스페인 학살자들에게 쫓긴 잉카인들이 산속으로 숨어들어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도록 세운 비밀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도시의 모습이 신비하고 놀라운 만큼 그 도시의 유래에 대해서도 여러 이론이 있다. 여성 신관(神官)을 양성하던 종교 중심지란 이론에서부터 아마존과 잉카 제국을 연결하던 물류 중심지, 잉카 제국 왕의 별장이란 의견까지 다양하다.
잉카 원주민어로 ‘나이 든 봉우리’란 뜻의 마추픽추는 총 면적이 5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데도 도시 대부분이 산의 경사면에 건설되어 있어 외지인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다. 유적 주위는 높이 5미터, 너비 1.8미터의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요새라는 이름이 걸맞은 도시다.
한편 마추픽추가 앞서 설명한 대로 1500년대 이후 스페인 학살자들에게 쫓긴 잉카인들이 세운 도시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유적 전체가 그 시대에 세워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유적의 일부는 오래전, 그러니까 2000여 년 전에 건설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잉카 문명 이전에 존재하던 유적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명 도시를 건설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마추픽추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건물이 단층으로 지어져 있다는 것인데, 중심부에 위치한 왕녀의 궁전만이 복층 건물이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잉카 문명권에는 문자와 철, 화약, 바퀴가 없는데도 이 엄청난 양의 돌, 그것도 20톤이 넘는 돌들을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옮겨와 놀라운 도시를 건설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돌들로 만들어진 모든 건물이 종이 한 장 들어가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축조되었는데, 신전은 물론 궁궐, 거주지가 모두 그러하다.
마추픽추는 거주지와 농경지로 이루어져 있다. 계단식 밭인 농경지는 옥수수를 재배하여 1만여 명에 이르는 주민들을 충분히 먹여 살렸다고 전해진다.
한편 이곳은 그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잉카 제국이 스페인의 침략자 피사로의 구둣발에 짓밟힐 때도 살아남아 400여 년 동안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그 모습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추픽추의 보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잉카 문명의 흔적이 대부분 사라졌음은 우리에게 안타까움을 넘어 인류 문명의 상실이라는 값비싼 교훈을 전해 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반대편에 자리한 마추픽추는 더 이상 접촉하기 힘든 꿈속의 장소가 아니다. 1년에 40만 명이 넘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그런 까닭에 이제 마추픽추에 담긴 잉카 문명의 흔적이 알려지기를 기뻐하기보다는 이 유일한 잉카의 유적이 훼손되어 사라질 위기를 걱정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모든 물체를 넣기만 하면 빙글 돌아 안쪽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으며 뱀처럼 생겼다고 해서 빙엄이 붙인 ‘독사의 통로’, 신전 가운데 가장 뛰어난 ‘태양의 신전’, ‘신성한 광장’ 뒤에 자리한 왕가의 무덤 등도 언젠가는 우리의 발길 속에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그러기 전에 가서 그 놀라운 모습을 가슴 속에 간직해 두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나 하나라도 눈요기를 포기함으로써 소중한 유적의 보존에 한몫을 해야 할 것인지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하나 더! 빙엄은 사람의 유골을 포함한 5000여 점의 유물을 1911년부터 세 차례에 걸친 발굴 작업 끝에 미국으로 반출했다. 그때 그는 아우구스토 레기아 페루 대통령에게 1년 기한으로 반출 허가를 받았고 이후 18개월 동안 연장 허가를 받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선진국(그런 일을 저지르던 시기에는 제국주의 국가)으로 행세하고 인정받는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빙엄은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그 유물은 예일대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다. 이에 대해 페루 정부는 예일대를 상대로 유물 반환을 요구하고 법적 조치까지 취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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