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은 동생 이방원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을 일어켜 세자였던 방석을 죽이고 앉힌 자리이다. 방원의 뜻대로 방휘는 태조의 뒤를 이어 조선의 두 번째 왕이 되었다. 이는 조선 시대 왕위는 맏아들이 이어받는다는 원칙에 따를 거였다. 정조는 둘째 아들이었지만, 첫? 아들인 진안대군이 조선 건국 2년 만에 병으로 죽었기 때문에 살아있는 아들 중에는 정조가 가장 형이었다. 그래서 아무 명분도 없이 무력으로 왕의 자리에 오르는 게 부담스러웠던 방원은 일단 정종을 왕의 자리에 앉힌 것이다. 그렇게 정종은 조선의 2대 왕이 됐다. 정종은 누구보다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 자리는 동생 방원을 위해 잠시 맡아둔 자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정종은 나랏일보다 격구에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 격구는 말을 타고 채로 공을 쳐서 상대의 골대에 넣는 경기로, 무인 출신인 정종에게 딱 맞는 소일거리였다. 또한 이를 통해 "방원아 난 왕의 자리에 아무 관심이 없으니 때가되면 네가 왕의 자리를 찾아가거라."라고 온몸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정종은 태조와 방원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에 불과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왕이 된 다음 해, 정종은 수도를 개경으로 다시 옮겼다. 풍수지리적으로 좋다고 해서 수도를 한양으로 옮겼는데, 수도를 옮기자마자 형제가 서로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으니, 더 이상 한양에 머무를 수은 없는 일이었다. 더 이상 한양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 일엔 방원도 동의를 했다. 하지만 단 한 명, 태조는 강력히 반대했다.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당사자로서, 그곳에서 아들와 아내를 모두 잃고 개경으로 돌아가기가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경 환도가 결정되자, 태조는 사람들의 누능ㄹ 피해 이른 새벽에 개경으로 갔다. 정종은 개경으로 환도한 이후 문화 발전에 힘썼다. 이 과정에서 만든 게 흔히 세종이 세웠다고 알고 있는 집헌전이다. 그리고 조선의 각종 질병과 약초 치료법을 정리한 <향약제생집성방>도 간행했다. 이 밖에도 하급 관리가 상급 관리의 집을 방문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어, 권세가에게 청탁하는 것도 방지했다. 그리고 법을 정리하는 기관인 '조례상정도감'도 설치했다. 수도까지 다시 옮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종이 왕이 된지 2년 만에 2차 왕자의 난이 발생했다. 2차 왕자의 난을 이르킨 것은 넷째 방간이었다. 1차 왕자의 난 이후 조선의 모든 권력이 다섯째 ?g원에게 집중된 데 불만을 가지고 있던 방간은 방원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거짓 밀고까지 듣자, 참지 못하고 난을 일으킨 것이다. 빙간의 군사와 방원의 군사는 개성 시내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거듭했지만 얼마 못 가 방간의 군사들은 제압당했고, 방간은 목숨만 건진 채 유배를 갔다. 2차 왕자의 난이 끝나자, 방원은 더 이상 눈치를 보며 정종의 뒤에 숨어 있으려 하지 안항ㅆ다. 이에 정종은 방원에게 '왕위 넘기기' 작업을 시작했다. 정종에겐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동생 방원을 '왕세제'로 책봉해 왕위를 계승시키면 됐다. 하지만 방원은 '왕세자'로 책봉되길 원했다. 장자 계승을 원칙으로 삼는 조선에서 자연스럽게 완위를 이어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종은 방원이 원하는 대로 '아우를 아들로 삼겠다.'고 선언한 뒤, 군 통수권을 방원에게 넘겨주며, 왕의 자리에 미련이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보여 줬다.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에서 방원이 승리할 수 있었던 건, 방원의 사병이 많았기 때문이다. 방원과 정종은 이런 사병이야말로 왕의 권력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요소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라에 소속된 중앙군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사병을 가질 수 없게 했다. 그리고 기존의 사병들은 모두 나라의 군대인 삼군부로 흡수시키거나 해산시켰다. 이런 조치 이후, 왕에게 힘이 집중된 조선이 탄생됐다.사병을 ?壺記?것만으로는 권세가들의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힘 있는 권세가들은 개인 소유 토지와 노비들이 있어, 경제력이 왕 못지 않았다. 조선 초에는 빚을 못 갚아 노비로 전락하거나, 전쟁으로 인질이 된 이들이 노비가 되어, 노비가 조선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이를 정도였다. 이런 노비들을 풀어주면 나라는 세금을 내는 백성들이 늘어나는 동시에 권세가들의 힘은 약화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노비변정도감'을 설치해 억울하게 노비가 된 이들을 해방시켰다. 1400년 11월, 방원이 왕위에 오르겠다는 의중을 전해 왔을 때, 정종은 홀가분하게 왕의 자리를 넘겨줬다. 이후 상왕으로 물러난 뒤에도 정종은 20여 년을 더, 유유자적하며 살았다. 정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는데 많이 알게되었고, 정종처럼 왕의 자리에 별로 욕심을 가지지 않고 편하게 사는것도 좋다고 생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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